캘리포니아의 두 자매가 불행하게도 자궁암에 걸렸다.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암에 걸리게  한 성분이 DES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임신 중에 자매의 어머니가 먹은 약품 때문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자매는 소송을 제기했다. 사람이 먹는 약이 이렇게 위험한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함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 결함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는 것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엄격책임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법정에 피고를 세워야 겠는데 어머니가 어느 회사의 약을 먹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피고가 분명해야 소환장도 보내고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여기서 원고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특별한 방법을 동원했다.원고의 어머니가 먹었던 약 종류를 만들어 파는 모든 제조업자를 피고로 신청한 것이다. 그리고 법원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결과는 원고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배상액은 각 업체의 시장 점유율에 따라 나누어 졌다.

이것이 이른바 “기업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PL법이 매우 강력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 사건은 그중에서도 단연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업계 전체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이 판결 이후에 이와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확립됐던 PL의 3가지 법리(과실책임, 보증책임, 엄격책임)에 더하여 “기업의 책임” 이라는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낸 사건 이었다. 그래서 이를 기념비적인(Landmarking) 사건이라 불렀던 것이다. 혹자는 법 논리상 부당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손해의 원인제공이 명백해야 하는데 같은 종류의 약을 먹었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만약 어느 업체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자사의 제품을 이용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던가 아니면 자사의 제품에 결함이 없음(DES성분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과거에는 사건의 성격이 단순했다. 그래서 원고가 피고의 책임을 입증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특히 산업이 고도로 과학화 되어가면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개인이 피해의 내용을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개인은 과학과 산업의 놀라운 발전 앞에 무기력 해졌지만 기업은 막강한 조직과 자금, 설비가 있기 때문에 원인을 쉽게 증명할 수 가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소비자와 기업은 이제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PL법은 결과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 얼마나 충실했는가도 중요하게 따진다. 회사의 내부 의사결정까지  따지고 들어 소비자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 까지를 따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경제적 이득만을 위해 일한 결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아주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징벌적 배상으로 나아가 가장 앞서있다고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경우 형사상의 책임까지 붙기도 한다.

미국의 PL법을 제조자의 입장에서 보는 혹자들은 매우 불합리한 법이라고 불평한다. 지난 시대에는 법만 지키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라는 것만 해 가지고는 배상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아가 창조적으로 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